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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형간염 보균자이다(1) - 헌혈차

낙서장

by wellwave 2024. 7. 30.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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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형간염 보균자이다.

내가 태어난해는 80년대이고 그때만 해도 신생아 비형간염 예방접종이 그리 흔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나는 아마도 모계 수직 감염이 맞을거다.

내 아래로는 90년대에 태어난 동생이 하나 있는데 신생아 비형간염 예방접종 덕에 다행히 비형간염에서 자유롭다.

내가 보균자이니 당연히 내 동생도 보균자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검색해보니 뭐 그렇다고 하더라.

 

나는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도 비형간염 보균자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굉장히 흔했다(?)라고 들었는데 그 어른들 어깨에 흉터 하나씩 남아있는 불주사라는게 원인이라고 한다. 나라가 풍족하지 않았던 그때는 주사바늘을 불에만 달궈서 돌려썼기 때문에 직접 감염으로 전파가 됬을테니.

 

우리 엄마의 감염 경로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엄마도 비형간염 보균자인건 확실하다.

 

나는 어릴때 각종 체육 대회에서 상들을 휩쓸었고 동네 옆학교에서도 알아주는 말 그대로 운동광이었다. 건강하나는 정말 자부할 수 있었고 그 어떤 종목도 두렵지 않을 만큼 건강하게 아픈 곳 하나 없이 자랐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냈고 체대에 입학했다. 그때는 다들 '아 쟤는 당연히 체대에 가겠지.' 했기 때문에 놀랄일도 아니었다.

 

호주머니가 얇았던 대학생 시절 어느날 학교에 헌혈차가 왔다. 다들 한 건강하는 체대생들인지라 줄을 서서 헌혈을 했을 만큼 학생들은 적극적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상품(?)들도 후했다.

 

영화가 보고 싶었던 나와 친구들은 점심때를 노려 헌혈차로 달려갔다. 각자 신분증을 주고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간단한 채혈 검사 같은거를 하는 듯 했는데, 나는 부르질 않는거다. 한참 있다가 직원이 나에게 오더니 나는 헌혈이 안된다는 말을 했다.

 

'저기 학생, 죄송한데 헌혈이 안될것 같아요.'

'네? 왜요? 저 고등학생때도 한번 했었는데..'

 

그렇다. 18살때 쯤이었나, 헌혈 한 번 하고 또 영화표를 받아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그게.. 잠깐 이리로 와볼래요?'

 

어리둥절한 나를 헌혈차 한 귀퉁이로 데려가 앉히더니 그 직원분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헌혈했다는 피가 폐기됐을거에요. 본인 비형간염 보균자이신데, 들어본 적 없어요?'

'비형간염 보균자요? 그게 뭐에요?'

'음,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좀 그런데, 본인 피에 남에게 가면 안되는 바이러스 같은게 있는거에요.'

'네? 무슨 바이러스요?'

'여기에서 설명하긴 좀 어렵고, 음.. 아마 부모님은 아실텐데. 혹시 시간나면 동네 보건소나 병원에서 피검사 한번 해보시는걸 권장드려요.'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일단 헌혈차를 나와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이 아신다니까.

비형간염 보균자가 무엇인지, 지금 나보고 헌혈이 안된다고 하는데, 이거 무슨일인지. 아빠한테 묻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고 질문을 들은 아빠는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전혀 신경쓰지마. 사는데 아무 지장없어. 헌혈 그거 안하면 되는거지. 아빠도 사는데 아무 문제 없어!!'

 

여기서 나는 '아빠도'라는 말에 흠칫했다. 아, 아빠도 그렇구나.

하지만 내가 보는 아빠는 건강했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기에는 너무나 평범했고 나 역시도 오히려 더 건강하면 건강했지 아픈 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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